동서양을 불문하고 병리학은 상당히 어렵고 문턱이 높은 학문체계라고 생각해 왔다. 특히 병리학에는 외워야 하는 복잡한 용어와 정의 등이 많으며, 현미경 등의 영상 소견이 기본이 되고 있어서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경험적인 요소를 근거로 해서 발전해 가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1-1 우리는 왜 병리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병리학은 영어로 표기하면 Pathology이다. 이것은 원래 그리스어로 병이라는 의미의 "Pathos`와 학문을 의미하는 `Logos`가 합쳐진 말이다. 이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병리학(병이나 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며, 또한 병의 성립과 원인. 경과 등 모든 질환의 기본적인 면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이처럼 병리학은 현재 동서양을 불문하고 병을 취급하거나 병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정에서는 꼭 필요한 기본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의학 분야의 교육과 정 또는 직종에서는 병리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기초가 형성되지 않아 나중에
아무리 응용적인 면을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졸업 후 이 분야의 직종에서 활동하는데 큰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병리학은 의학, 치의학, 수의학, 약학, 간호학, 임상검사 의학, 물리치료학, 의료복지학, 치과 기공학, 치과 위생학, 영양학 등 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매우 넓은 영역의 교육과정에서 필수적인 강의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러한 병리학을 좀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기 위하여, 이 장에서는 병리학이 어떠한 형태로 형성되어 왔는지 질환에 대한 개념의 변천 및 병인론을 토대로 해서 정리해 보겠다. 병리학이라는 학문체계가 확립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건강은 어떠한 상황이 되었을까 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병리학을 왜 배워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1-2 질환 개념의 변천과 근대 병리학의 확립
최근 모친에게서만 유래하는 미토콘드리아 DNA 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면서 근역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발굴된 뼈나 미라 등의 해석으로 고대인이 어떠한 질환에 걸렸었는가 하는 것도 유전자 수준에서의 검토를 포함해서 상당히 과학적으로 판명되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 의하면, 인류가 수렵 생활을 하며 이동하던 시대에는 생활환경이 혹독했기 때문에 외상 등의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발견됐다. 그러나 그 후 인류가 정착해 농경 생활이 시작되자, 언어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사람들 간의 접촉도 많아졌기 때문에 감염증으로 인해 병에 걸리는 빈도가 매우 높아졌다. 특히 결핵 등의 감염증은 유적에서 출토된 뼈를 분석해 보아도 상당히 만연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물론, 이런 감염증의 원인을 알지 못했으며 진단법이나 치료법 등을 보아도 약초 같은 경험적인 처방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그 당시에는 이러한 질환이 재앙, 정형, 악령 등의 초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이러한 감염증에 걸린 환자를 기도 술이나 악마 퇴치법 등으로 치료하려고 하였다. 그때 만일 감염증의 원인이 병원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설령 항생물질 등의 치료법이 없었더라도 환자와의 만남을 삼간다든지, 여러 가지 대처법을 통해 경과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또한 감염증은 특별히 이런 고대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중세 유럽의 역사와 사회를 크게 바꾼 흑사병. 페스트, 천연두 등도 그 병의 원인, 즉 병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이처럼 감염증의 원인을 비롯한 병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인가? 즉 병리는 조로아스터교 동에서 말하는 (일신교의 발달과 함께) 모든 사상을 선과 악 또는 밝음과 어두움이라고 하는 두 가지 요소의 조합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생체에 있어서도 이러한 균형에 의해서 다양한 질환이 생긴다고 하는 개념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 개념은 인도의 아유르베다(Ayurveda)를 토대로 한 의학이나 음양도에서 있는 동양의학, 그리고 동종 요법(hameopathy) 동에서는 지금도 존속하고 있다. 한편 질환의 원인, 즉 병리에서는 체액의 이상에서 여러 가지 질환이 발생한다고 하는 이른바 `액성 병리학`이라는 개념이 히포크라테스(tippocrates)로 대표되는 고대그리스 동에서 수립되어, 그 후 서양의학의 중심적인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의식은 ‘악액질’ (Cachexia)과 같은 용어에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개념은 오랫동안 의학, 특히 서양의학의 중심을 이루었다. 즉, 나쁜 체액이나 혈액에 의해 모든 병이 생긴다고 하는 병리학의 학문체계가 탄생된 것이다.
병의 원인을 치료하려고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나쁜 혈액을 없애기 위해 신체에서 혈액을 뽑아 버리는 일이 중세 유럽에서는 빈번하게 행해졌다. 이 설은 그때까지 악령이나 정령 등을 원인으로 하는 병의 원인론보다 과학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리스의 학문체계 재평가와 더불어 당연히 서구 사회에서는 설득력을 가졌다. 그러나 이 설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은 근대에 와서 분명하게 밝혀졌다. 코르크를 관찰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로버트 혹(Robert Hook)이 현미경을 발명함으로써, 그때까지 육안으로밖에 관찰할 수 없었던 것을 미세 부분까지 검토할 수 있게 되었고, 프로이센(Pnuisen)과 폴 에리히(Paul Ehrlich) 등이 염색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마침내 근대의학 및 질환의 개념, 즉 진정한 병리학이 과학적으로 수립되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교회 권위의 실추와 함께 루벤스의 유명한 회화에서 볼 수 있듯이 사후의 병리해부라는 것에 대해서 사회적인 저항이 점점 없어져, 부검 소견을 임상소견과 대용시킴으로써 그 환자가 많던 질환이 인체에 미쳤던 영향, 그리고 병인의 추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도 (해체신서)가 의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듯이, 모르가니(Morgani) 등의 병리해부를 통해 환자 개개인이 갖고 있는 질환의 원인을 밝히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어 마침내 과학적 실증을 토대로 하는 근대의학의 기초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학문의 발달과정에서 질환의 원인과 경과 및 현대의학의 기본적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하여 그때까지 액성 병리학에 근거하고 있던 개념을 바꾼 것이 독일의 루돌프 비르효(Rudolf virchow)가 1858년에 쓴 <세포병리학(Cellularpathologie)>이라는 저서이다. 이 책에서 Virchow는 근대병리학 또는 현대의학의 확립에 관해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을 제창하였다. 한 가지는 그 유명한 일화, 즉 omnis cellula e ccllula," (모든 세포는 세포로부터 발생한다)라는 것이며, 또 한 가지는 "모든 생물은 아무리 복잡해도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포의 이상이 질환을 일으킨다"라는 것이었고
다.
이러한 개념이 지금은 매우 평범하게 생각되지만, 혈액 등의 체액이 나빠서 병에 걸렸다든지 행실이 나빠서 병에 걸렸다는 개념이 횡행하고 있던 당시에, 현미경을 통한 형태학적 관찰만으로 이러한 설을 수립했다는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 후 이 세포병리학의 개념을 토대로 병리학과 의학뿐만 아니라 생물학, 그 자체도 비약적으로 진보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개념이 확립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발달한 질환의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인류가 가진, 질환에 대한 기본적 개념은 그 후 150년 가까이 지나 사람의 유전자가 모두 해석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Virchow의 <세포병리학>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 없다. 인체의 질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유전자 진단 등으로 자칫 잘못된 결원을 내려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오늘날의 풍조에서는 오히려 이 <세포병리학>의 내용 및 그 기본이 된 현미경으로 관찰한 병리 형태학의 개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지금부터 배우려고 하는 병리학, 더 나아가서 의학의 본질은 이 세포병리학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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